글로벌 통신관련 학술단체인 국제전기전자공학협회(IEEE)가 SK텔레콤의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를 'ICT 명예의전당'이라 불리는 IEEE의 마일스톤에 등재했습니다. 국내 기업이 IEEE 마일스톤에 등쟁된 것은 SK텔레콤이 처음입니다. '통신강국 코리아'의 쾌거입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고객이 실제로 CDMA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밤낮없이 고생한 우리 구성원들의 끈질기고 치열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며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새겨진 개척자의 DNA를 활용해 당면한 수많은 새로운 문제들을 헤쳐나가 제2, 제3의 마일스톤 사례를 발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끈질기고 치열한 노력, 그리고 개척자 DNA
- 유영상 사장의 발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지점이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끈질기고 치열한 노력'과 '개척자 DNA'입니다. 좋은 말이지만, 이날따라 유독 이 문장이 눈길을 끄는 것은 최근 SK그룹의 사업 외적인 이슈 때문입니다.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 선고를 통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의 재산을 분할해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위자료도 20억원 지급하라고 했죠.
이 판결문에는 SK그룹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호가 있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소영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그룹의 성공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는 취지입니다. 그동안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만을 밝혀왔던 SK그룹이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태원 회장 역시 판결 이후 계열사 사장단을 긴급 소집해 "SK그룹 성장의 역사를 부정한 판결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SK텔레콤이 억울한 이유
- 역사를 되돌아 보면, SK그룹의 항변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은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1992년, 이동통신사업권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사업 선정 시작부터 특혜 논란이 일었습니다. 당시 체신부(정보통신부)는 이동통신사업 심사 점수표를 구체적으로 공개하면서 잡음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여론은 '특혜' 쪽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결국 선경그룹은 사업자 선정 1주일만에 사업권을 반납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선경그룹이 이동통신사업에 재도전한 것은 1994년입니다. 당시에도 특혜 논란을 피하기 위해 허가사업에 참여하는 대신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매입하는 형태로 이동통신 사업에 진입합니다. 당시 한국이동통신 주식은 민영화 추진이라는 이슈와 맞물려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선경그룹은 허가권 획득 대신 주식 매입을 택했습니다. 일각에서 "특혜시비로 인해 선경그룹이 이익을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봤다"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경유착'과 '끈질긴 노력' 사이
- SK그룹을 키우는 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의 도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 대다수도 대통령의 딸과 결혼한 것이 사업적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일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는 상황인데, 재판부는 명확한 증거 없이 국민 정서와 심증만을 이야기했습니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상고를 결정한 것이겠죠. 결국 이번 이혼 재판은 대법원에서 결론이 나겠지만, SK그룹과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SK그룹이 '정경유착'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 억울할 수 있습니다. IEEE 마일스톤 등재는 지난 2016년부터 추진됐던 사안이라고 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등재가 결정되고 현판식을 하는 시점이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송 2심 판결이 나온 직후인만큼 SK그룹에서도 이를 알리며 '구성원들의 끈질긴 노력'을 강조했을 것입니다. 정권의 비호로 성장한 회사가 아니라 정당하게 사업권을 획득하고 수많은 직원들의 기여로 만들어진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겁니다.
사실관계가 아닌 법리 적용에 대해서 판단하는 상고심에서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호'를 인정할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법조인들도 다수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의 항변이기도 한 '구성원들의 끈질긴 노력'을 재판부가 인정할까요? SK그룹은 앞으로 또 어떤 항변을 내놓을까요.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