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17년간 길러온 수염을 밀고 공동체 비상경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수염은 카카오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한 2006년을 시작으로 국정감사나 금융감독원 소환조사 자리에 섰을 때도 유지하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면도로 강력한 쇄신 의지를 드러낸 김범수 창업주는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의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의 쇄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입니다. 여기서 한 번 카카오의 '원점'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김범수 창업주는 카카오톡이 10주년을 맞은 2020년, 크루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카카오를 창업할 때 '대한민국에 없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도전의식이 있었다"며 "사람이나 시스템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일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영어 호칭, 모든 정보 공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될 수 있도록 많은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김범수 창업주는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카카오로 재탄생해야 한다"며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영어 이름 사용, 정보 공유와 수평 문화 등까지 원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카카오스러움'이 재계 서열 15위에 오른 현재는 맞지 않은 옷이 됐다는 토로였습니다. 이후 카카오를 상징하던 자율 경영, 수평적 문화 대신 총수의 책임 경영, 강력한 컨트롤타워 같은 키워드가 등장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많이 보던, 재벌 기업들을 상징하는 키워드입니다.
카카오는 이제 AI 시대를 맞아 재도약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저는 카카오스러움을 벗고 대기업스러워지는게 과연 옳은 쇄신 방향인가 의문도 듭니다. 오히려 한두 명의 선장이 아닌 크루 전체가 배를 움직이며 새로운 도전을 향한 항해를 멈추지 않았던 '스타트업 카카오'가 다시 한번 돌아볼만한 '원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AI 시대에는 정박하지 않는 혁신과 창발적 조직이 더욱 필요합니다. 카카오의 쇄신은 사회적 책임을 강화함과 동시에 '혁신 DNA'를 되살리는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카카오가 다시 한번 놀라운 혁신으로 '국민 AI 기업'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